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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소리] 씨앗매개자 강나루의 예술
2022.06.17 15:10 언니네텃밭 412

씨앗매개자 강나루의 예술

[BOOK世通, 제주 읽기] (241) 강나루, 일상의 씨앗들, 크랙아티스트매니지먼트 출판, 2021

강나루, 일상의 씨앗들, 크랙아티스트매니지먼트 출판, 2021. 사진=텀블벅.
강나루, 일상의 씨앗들, 크랙아티스트매니지먼트 출판, 2021. 사진=텀블벅.

2014년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한 예술가 강나루. 그는 농사를 예술로 연결한다. 현재 직함도 이채롭다. 전국여성농민회 제주도연합 조천읍지회 사무국장과 언니네텃밭 장터사무장을 맡고 있는 그는 대안적 실천으로 농업의 미래를 여는 농부활동가이다. 이 책 <일상의 씨앗들>은 예술가 강나루가 농부 강나루로 거듭나면서 체험한 일들을 글과 사진에 담은 것이다.

2020년부터 시간의 역순으로 201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6년간의 텃밭농사 과정을 압축적으로 돌아보는 일기를 통하여 우리는 한 예술가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유와 과정, 그리고 그 결과를 만날 수 있다. 한 예술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에 최우선적인 관건은 방법론적인 독창성을 확립하는 일인데, 그는 회화나 조각의 스타일 문제가 아닌 자연농 씨앗매개라는 활동을 통하여 예술가로서의 독창성을 확립했다. 

제주도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일상의 생명 에너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자연농을 통하여 씨앗의 힘에 이끌렸다. 그는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생장하여 열매를 맺고 그 씨앗이 다시 대를 이어 이 땅과 만나는 과정에 토종씨앗의 생명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노동으로 그렇게 대를 이어 연결하는 토종씨앗의 전 과정을 체험하기로 했다. 그는 씨앗을 뿌리고 길러서 거두는 파종과 채종의 과정을 스스로 만들어갔다. 그는 자연농으로 토종씨앗을 대물림하는 과정에서 예술비평 언어인 ‘기운생동’을 자연 속에서 만나기 시작했고 그것을 자신의 예술로 만들어왔다. 자연의 힘으로부터 예술적 소통의 계기점을 만드는 일은 대체로 자연을 관찰이나 체험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에 머무는데, 강나루의 경우 농사라는 활동으로 자연의 생명 에너지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지금까지 4회의 개인전을 개최한 강나루는 생명 에너지를 탐구하는 작가이다. 20대부터 공공미술 활동에 참가해온 그는 예술을 통하여 도시와 공동체, 지역, 상호작용 등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다. 강나루는 조소를 전공한 사람이다. 흔히들 조각가라고 불리는 직업을 가질만한 예술가이지만, 그는 조각을 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조각은 흙과 돌과 나무와 쇠를 다룬다. 하지만 강나루가 다루는 것은 풀꽃이자 곡식이다. 도구는 골갱이(호미) 한 자루면 충분하다. 그는 씨앗을 잇는 일을 하는 예술가로서 ‘씨앗매개자’라는 직함을 자처한다. 그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채집과 더불어 텃밭 농사로 생명의 가치를 짙게 체험하다가 자연농을 만났다. 그는 자연농을 자신의 인생철학으로 받아들이고 자연농 텃밭 농사와 거기에서 나온 식재료로 요리하는 일상을 통해 행복을 얻었다.

제주의 들에서 토종 밭벼 농사에 도전했다가 토종씨앗이라는 화두를 얻은 그는 전국여성농민회 제주도연합의 ‘토종추수한마당’에 참석했다가 토종씨앗 나눔과 ‘언니네 텃밭’을 만났다. 토종 농산물과 씨앗에 대한 그의 관심은 여성농민회 단체활동에 참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후 5백평 규모의 땅을 빌려 직접 자연농을 하며 텃밭 유목민이 되었다. 고된 노동과정을 통하여 토종씨앗을 씨뿌리고 길러서 거두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그는 대안적 실천의 농부가 되었다. 그는 제주농업기술원의 지원 프로그램으로 전여농 제주도연합이 펴낸 책 <삼춘들의 씨앗 주머니 속 이야기> 출간에 인터뷰어로 참가했다.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는 토종씨앗 속에 자연과 개인의 삶은 물론 공동체의 문화까지 짙게 베어있음을 깨닫고 그것을 자기 예술의 굳건한 화두로 삼았다.  

이미 현실로 다가온 씨앗주권의 문제를 비롯해 미래의 식량주권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음을 절감하며 그는 국가와 자본 만이 아닌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지속가능한 씨앗’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예술가로 진화해왔다. 자연농으로 토종씨앗 농사를 짓는 강나루는 씨앗매개자로서 자신의 체험한 내용들을 예술작품으로 연결했다. 먹거리 나눔 연결망인 ‘언네네텃밭’ 구성원으로 활동하면서 농사와 요리, 맛, 생명, 생태, 에너지 등의 화두를 풀어 드로잉과 씨앗 설치작업을 풀어냈다. 농부로서의 체험을 예술가로서의 창작으로 연결한 그의 활동은 미술계에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클라우드 펀딩으로 펴낸 이 책, <일상의 씨앗>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책방에서 판매되고 있을 정도로 생태적 관점의 예술활동으로 공감대를 확장하고 있다. 

제주의 들판에서 골갱이 하나로 일궈가는 씨앗매개자 강나루의 예술은 생태예술, 농사예술, 융합예술, 공동체예술 등의 관점에서 비평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농사예술은 생태예술의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뿌리를 이룬다. 한국의 현대미술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농사가 예술이다’라는 주장과 함께 자연미술 운동이 시작되었다. 공주의 예술가 임동식은 ‘농즉예(農卽藝) 예즉농(藝卽農)’을 기치로 오늘날 공주자연미술비엔날레의 모체인 ‘야투(野投)’ 그룹 활동을 펼쳤다. 한때 쌈지라는 패션 브랜드를 이끌었던 천호균은 ‘쌈지농부’라는 이름으로 농사예술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생태예술이라는 큰 틀에서 자연과 생명, 농사, 공동체 등의 개념과 함께 강나루의 예술은 씨앗 잇기라는 실천적 매개활동을 통하여 더욱 단단하게 농사예술을 구체화하고 있다. 

나아가 강나루의 활동은 융합예술이다. 그의 활동은 농사와 요리, 농민활동 그리고 예술로 이어진다. 그는 예술을 본업으로 하되 특정 장르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여러 영역을 아우르며 잇는다. 그의 융합은 지역적 한계도 넘어선다. 그는 제주도 내는 물론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도 만난다. 지역활동을 상호성에 입각하고 교류하고 연결하는 것으로서 더욱 단단한 활동가로서의 위상을 다져나가고 있다. 그의 창작은 작업실이 만이 아닌 밭에서 주로 이뤄지며, 그의 매개 활동은 갤러리나 미술관 만이 아닌 씨앗과 먹거리의 나눔 활동이라는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해 있다. 이런 점에서 강나루는 근대 이후 예술이 정초해 화이트큐브를 넘어 예술과 일상을 매개하는 융합예술가이다. 

강나루의 실천은 공동체예술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만하다. 그는 텃밭에서 농사지은 농산품들로 계절꾸러미를 만들어 회원들과 나누는 공동체 활동을 한다. 토종씨앗을 지키는 사람들의 연대를 기반으로 자연농으로 지은 농산물을 나누는 활동에 뛰어든 그는 농민단체 활동가이다. 단체 활동이라는 것이 워낙에 공동체성 기반이기도 하거니와 그가 추구하는 예술활동 자체가 공공미술에서 출발한 공동체예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제주도에 정착한 이후 이어온 일련의 활동은 일관된 맥락을 가진 일이다. 공동체예술의 미덕인 상호부조와 공존이라는 가치 지향을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는 강나루의 활동은 오늘날의 공공미술이 처한 한계 상황과 견주어 볼 때 주목할만 하다. 

대규모 예산을 확보하고 공공성의 외피를 쓴 채 예술가의 자기언어를 무의미하게 반복 재생산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 제도화한 공공미술에 비해 강나루의 활동은 매우 성찰적이며 실천적인 공동체 지향성을 확보하고 있다. 골갱이 한 자루를 들고 제주의 들판을 쓰다듬으며 씨앗을 뿌리고 가꿔내고 그 씨앗을 거둬 계절을 넘기고 해를 넘기며 이어나가는 씨앗매개자, 자신이 일상을 꾸리고 있는 제주사회의 건강한 생산 공동체와 소비 공동체의 활동가로서 생태적 삶의 아름다운 진실을 만들어 나가는 활동가, 대안공간과 미술관의 출품과 대안적인 출판으로 자신의 생태적 체험을 예술공론장으로 확장하는 예술가로서 강나루의 삶과 일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예술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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