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온] 사이트에 올라온 시가 멋져 저자의 허락을 받아 공유합니다!
시금치는 분홍색이다
- 권말선
온라인 장터 <언니네텃밭>에서 황선숙 언니의 겨울시금치 1kg을 샀다 들에서 캔 냉이처럼 긴 뿌리를 가진, 뿌리채 내게로 온 시금치는 분홍색이다 꿀을 머금은 사과꽃잎처럼 잠든 아가의 날숨처럼 세상에나, 곱기도 하지 뿌리는 발그레한 분홍색이다
전남 무안에서 올라온 한 통의 편지 같은 시금치의 겨울 이야기가 분홍 뿌리에, 황토 사이에 묻어있다 긴 겨울 개쑥갓, 비름, 까마중 틈에서 더러 눈 속에 파묻히기도 하고 흰서리발에 까무룩해지기도 하고 종일 찬바람에 떨기도 하며 얼었다 녹았다 또 얼었다를 묵묵히 견뎌내다 보니 그만 발그레해졌단다
가을의 씨뿌림부터 겨울의 거둠까지 몇 달의 시간이 고스란히 한 접시 정겨운 찬으로 식탁에 놓였다 한다 뿌리가 주는 아삭한 식감과 단맛은 제게는 겨울을 이겨낸 훈장이고 내게는 겨울을 이겨낼 위로라 한다 그러니 너도 온갖 추위 다 견디는 달고 든든한 뿌리가 되라 한다
해마다 겨울이면 무안의 황토텃밭 뿌리 어여쁜 시금치는 된장국으로도 고추장무침으로도 샐러드, 튀김 잡채, 스파게티에도 골고루 어울리게 얼었다 녹았다 또 얼어가며 분홍, 초록의 편지지에 달달한 겨울기운 쟁여 넣고서 까치발로 서서 기다리고 있을게다, 나를
출처 : 한겨레:온(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6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