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언니 ⑥ 논산 '권태옥'
언니네텃밭 여성농민 생산자 협동조합이 한 달에 한 번, ‘이달의 언니’를 소개합니다. 토종씨앗을 잇는 활동으로 씨앗의 권리를 찾고, 농생태학을 배우고 실천하며 자신과 주변 생태계를 돌보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언니네텃밭 여성농민들. 느리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자신과 주변을 살리는 언니들의 농사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섯 번째 생산자는 언니네텃밭에서 다양한 토종작물을 선보이는 더불어농원의 권태옥 언니입니다.
토종작물, 농생물과 함께 더불어 살아요
수확을 앞둔 벼를 안고 환하게 웃는 더불어농장 권태옥 여성농민
농민은 어떤 사람일까요? 충남 논산에서 ‘더불어농원’을 운영하는 권태옥 언니에게 농민이란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사람’입니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전통적으로 농민은 농사를 짓는 사람일 뿐 아니라 씨앗을 잇는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종자와 모종을 쉽게 살 수 있는 요즈음의 농사에서는 씨앗을 잇는 것에 대한 과정이 완전히 생략되어 있죠. 언니네텃밭에는 잃어버린 우리 토종 종자와 농민의 역할을 이으려 노력하는 여성농민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토종을 기르고 알리는 데 부단히 노력하려 애쓰는 언니네텃밭의 새로운 얼굴, 권태옥 여성농민을 소개합니다.
일회용 씨앗 대신, 대를 잇는 씨앗을 지키는 농민권태옥 여성농민은 농사를 지은 지 30년이 넘은 베테랑 농민입니다. 처음부터 유기농으로 농사짓고, 다품종 생산을 고집했던 농민은 아니었지만 남들이 “안 된다” 했던 시절부터 유기농을 시작했고, 마을의 첫 번째 유기농 쌀 생산자가 됐다고 해요. 더불어농원이 유기농으로 전환한 뒤 “사서 고생한다”던 이웃들도 이제는 유기농으로 전환한 농가가 많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쌀농사만 짓다 15년 전, 밭농사를 시도하면서 처음으로 들판에 심어진 씨앗이 일회용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아마 농산물의 90% 이상이 일회용 씨앗일 거야. 왜 일회용 씨앗이라고 부르냐면 종자를 받아 다시 심고 수확하지 못하도록 불임처리를 하기 때문에 한 번 밖에 사용하지 못 하거든. 당근이나 단호박 같이 인기있는 과수는 일본에서 들여온 것들이 많아. 단호박의 90% 이상이 일본 종자니까, 만약에 일본이 씨앗을 안 주면 단호박 농사는 못 짓지 않겠어? 그래서 우리나라를 ‘씨앗 식민지’라고도 불러. 일본에서 종자 안 주면 한국은 쌀 밖에 없을 거라고. 그게 너무 안타까워서 배추도 쪽파도 다 우리걸로 농사짓고 있지. 종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농민에게는 지금의 코로나19 바이러스 문제도 다르게 보입니다. 대부분의 다국적 종자회사 채종포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분포해 있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생산량이 줄어버리면 마스크 대란은 아무 것도 아닐 거라고요. 그런 농민의 걱정은 아무리 힘들어도, 가짓수를 줄이고 싶어도 자신의 손에 한번 쥐어진 종자를 한해 한해 지켜나가는 겁니다.
“토종하면서 호미를 본격적으로 들기 시작했어. 처음엔 손가락에 병이 들어서 지금도 손가락을 완전히 펴지 못해. 내가 농사 짓는 걸 보고 동네사람들은 ‘헛지랄 하지 말고 딸기 농사 지으면 되지. 콩 한가지만 심지.’ 이렇게 말하기도 해. (웃음) 왜냐하면 작년에는 콩이랑 팥을 21가지 종류를 심었어. 똑같은 걸 심으면 한번에 수확해서 선별해서 갈무리하면 괜찮은데, 그 과정을 21번 해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21번 힘든 셈이지. 나도 힘들어서 매년 올해는 조금만 줄여야지 생각하는데 막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아. 때 되면 씨앗을 꺼내서 심게 되더라고.”
지금은 더불어농원의 시그니처가 된 돼지찰도 처음에는 수확량이 적어 기르는 것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시가에서 대대로 이어온 돼지찰 대신 개량 종자로 바꿔 농사지었고, 토종종자의 진가를 알게 되자 다시 수소문해 종자를 구해 심었다는 웃지 못할 사연도 있습니다. 그 귀한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지난 2017년에는 국제슬로푸드협회가 지정한 ‘맛의방주(점점 잊혀져가는 우리의 소중한 음식문화유산을 기록하고 지키는 국제슬로푸드프로젝트)’에 56번째로 등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해요. 얼마 전에는 토종 버들벼를 맛의방주에 등재해 맛의방주 두가지를 지키는 농민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영광에 비해 아직 진가를 알아주는 소비자가 적어 늘 판로가 고민이라는 태옥 언니. 지금은 돼지찰 찹쌀, 녹미로 소비자와 만나고 있습니다. 태옥 언니에게는 토종종자만큼 소중히 지키는 가치가 하나 더 있습니다. 다양한 생명이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풀이 작물을 덮치지 않는 만큼만 자라면 오히려 더 좋다는 것이 더불어농원의 농사철학. 흔히 농사를 ‘풀과의 전쟁’이라 부르지만 더불어농원은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풀이 작물과 같이 사는 건 오히려 더 좋아. 풀 뿌리가 땅 속 깊숙히 들어가서 중금속을 빨아들이기도 하고, 뿌리 사이사이로 물도 저장하니 작물을 오히려 서포트 해주지. 풀과도 더불어 사는 것이 농장의 철학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농사의 주변의 있는 농생물과도 더불어 사는 것을 꿈꾸는 태옥 언니. 그래서 흙의 좋은 떼알구조를 유지시켜주기 위해 하우스 안쪽 땅은 갈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땅을 갈면 풀과 미생물이 만든 떼알구조를 해치고, 공기와 물이 잘 들어갈 수 없도록 다져지기 때문이죠. 그럴수록 농기계도 덜 쓰게 되니 더불어농원은 저탄소 인증을 받은 농장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떻게 농사 지었지? 생각해봤는데 예전 농사는 내 농사만 잘 지으면 됐어. 토양살충제 뿌려서 미생물 벌레 다 죽여서 내가 심는 양파, 고추, 사과나무만 잘 되면 되는 농사였거든. 이래서야 내가 죽겠다 싶어서 유기농으로 전환했지. 사람들이 처음에는 ‘어떻게 농약 안 치고 농사를 지어?’ 그랬는데 2~3년 지나니까 ‘어? 별 차이가 없네?’ 이러더니 우리가 유기농으로 전환한 지 5년 뒤에 유기농인증 받으니까 지금은 마을에서 스물 일곱곳이 유기농사지어. 처음엔 4천평 논만 유기농가였는데 지금은 18만평. 처음엔 ‘너 혼자 농약 안하고 유기농 하면 뭐해’ 이런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는데 혼자라도 해야해. 그래야 2명이 3명 되고, 5명 된다? 여농도 그렇지. 선구자가 힘들긴 힘들어도 계속 옳은 일 하는 사람의 숫자를 늘려야 해.” 일단 섞어 지을 때 가장 기본은 키가 큰 것과 작은 것을 함께 짓는 거야. 공생관계 될 수 있는 것. 키가 큰 작물이 햇빛을 지나치게 많이 받으면 안되는 작물에게 그늘을 주거든. 작물이 모두 사이가 좋은 건 아냐. 오이랑 고추랑 심으면 안 돼. 넝굴식물도 고추 주변에 심으면 안 되고. 얘랑 심었더니 안 좋아, 그런건 기억했다가 안하기도 해. 너무 사랑해서 괴롭히는 작물도 있다니까. 예를들어 고추 아래에 사과참외를 심었는데 덩쿨이 고추를 다 잡아당겨서 못살게 하더라. 이런 작물은 따로 심어야지. 바질이랑 토마토 같이 먹을 때 궁합 맞는 것은 농사지을 때도 사이가 좋아. 토마토 물 많은 데 바질이 물을 더 많이 먹어서 가져가. 그래서 둘이 같이 심으면 서로 잘 자랄 수 있지. 시금치, 마늘, 상추도 함께 심어. 마늘 심은 곳 군데군데 상추를 심어주면 서로 방해하지 않고 잘 자라지. 이를테면 고추 심은 데 아무 것도 안 하면 풀이 금방 올라오는데 상추를 옆에 심으면 벌레를 막아준다니까. 옥수수 아래 콩을 심어 옥수수를 지지대 삼아 올라가게 하고, 아래에 호박을 심어 땅을 덮어주는 것을 ‘세자매 농법’이라 불러. 항상 인터넷을 많이 검색하고 찾아봐. 누가 사이가 좋은지... 파는 항상 다른 작물을 도와주는 성격이 있어 많이 심지. 브로콜리 5월에 따면 잎 정리하고 그 자리에 고추를 심어. 참깨도 미리 심어둔 다음에 고구마를 심으면 고구마는 옆으로, 참깨는 위로 가지. 참깨 벨 때는 고구마 밟아도 될 때니까 고구마 밟으며 가서 베어도 되고. “몇 년 전에 우리집에 누가 온대. 토종에 관심있다고. 그 사람이랑 같이 밭 매면서 얘기하다 설득 당했지. (웃음) 1년동안 논산여농 모임 준비하고 다음에 창립하고, 창립한지 2년째야. 솔직히 전여농(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뭔지도 몰랐지. 여농은 다른 모임이랑은 달라. 밥만 먹고 헤어지는게 아니라 미투운동이라든지 방위분담금 같은 시사 이슈를 서로 공유해. 얼마 전에는 책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고 토론했는데, 정말 이가 갈리도록 어려웠지 뭐야. (웃음)” 홀로 토종을 지켜온 것이 내내 외롭게 느껴졌는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과 언니네텃밭을 만나며 동지가 생겼다는 권태옥 농민. 논산여농 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금세 열혈회원이 됐습니다. 논산여농을 만드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상을 주자 했을 때 자신에게 상을 줄 수 없어 시어머니를 위한 상을 만들었던 언니가, 65세에 처음 영화관을 가본 언니가, 여성농민회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이 생기고 함께 성장할 수 있어 무엇보다 좋다고 합니다. 여성농민회의 구호 ‘생산의 주인 삶의 주인 실천하는 여성농민’이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며 웃는 태옥 언니는 정말 구호와 잘 맞는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이 토종을 기르는 나한테 하는 말이 있어 ‘뭘 조금 조금씩 하고 있어. 돈도 안되는데,’ 하지만 누군가는 씨앗을 지키고. 누군가는 전달을 해야하지 않겠어. 우리엄마 뻘인 8,90대 엄마들 다 했어. 그 엄마들은 다 했는데 지금의 5,60대들이 그걸 안 했어. 전달을 안 받은 거야.” 당귀 씨앗은 흐르는 물에 오랫동안 둬야 하고. 목화씨는 거름이나 삭힌 오줌에 담가 촉을 틔우고, 무씨는 채를 쳐서 문질러야 씨를 받아야 한다는 것. 노랑콩은 차져서 막찰배기라 부르고, 그렇기 때문에 콩나물이나 콩국수로 할 때 맛있다는 것. 예전엔 당연하게 지키고 알았던 것들이 이제 대단한 것이 되며 당연한 일을 하지 않는 농민의 일상이 안타깝다는 태옥언니.
그는 “농민에게 농사의 시작은 봄이 아니라 여름”이라고 합니다. 봄에 싹이 나면 유독 여름에 눈에 띄게 잘 자라는 작물이 있고, 그러면 그 작물을 표시해 두는 것부터가 다음 농사를 위한 시작이라고요. 그렇게 선별해 둔 작물의 수확물은 절대 먹지 않고 씨앗으로 남겨두는 것. 씨앗과 관련된 모든 과정이 전부 농사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요리 역시 농사의 과정을 담아야 하고, 농부는 정말 즐거운 마음과 태도로 농사짓는 것. 거기까지가 권태옥 농민이 생각하는 진짜 농사의 과정입니다.
일본은 요리사들이 농사 짓는 것까지 같이 한대. 땅콩이 나무에서 열리는지 땅에서 나는지 모르는 요리사가 어떻게 제대로 요리하겠어. 이렇게 키우는구나. 이걸 내가 요리하는구나. 이걸 아는 것이 요리지. 우리 소비자 회원님들은 작물에서 흙이 나오면 그 흙을 버리지 않고 잘 털어서 화분에 준다고 하더라고. 이 흙이 정말 좋다는 걸 아는 거야. “토종을 지켜 대단하다”는 천마디 칭찬보다 더 많은 동지가 함께하는 것이 더 힘이 된다는 권태옥 농민. 똑같은 농사가 아닌 다양한 종자가, 다양한 방식의 농사가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는 태옥 언니의 농장에는 오늘도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생물들이 사이좋게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돼지찰은 고문헌과 민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찰벼로 꼽힙니다. 수량도 적고 벼가 잘 쓰러져 농사짓기가 힘들지만 떡을 했을 때 맛이 좋고, 덜 굳고, 강정을 만들면 고유한 전통의 맛이 살아 있어 맛이 일품입니다. 귀한 돼지찹쌀를 소비자 회원님들께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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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순환한다는 의미로 ‘동그라미’라는 브랜드로 판매하는 더불어농원의 녹미는 동의보감에도 소개된 적 있는 생동찰을 개량한 품종입니다. 현미로 먹었을 때 까슬까슬하지 않고 밥맛이 좋아 인기가 단연 좋습니다.
네이버 포스트 주소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8075825&memberNo=43269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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