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텃밭도 있습니다... 돈도 벌고, 지역도 지키는 언니들[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언니네텃밭 경북 상주 봉강공동체 21.02.19 20:05l최종 업데이트 21.02.22 16:47l 박진도(jd5285)
| ▲ 언니네텃밭 | ⓒ 지역재단 | |
"귀농해서 행복하다."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행복하다." "다른 사람과 함께해서 행복하다."
늘 행복한 모습의 박경숙(65)씨에게 이유를 물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먹을거리를 직접 길러서 먹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 일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어 행복하다. 무엇보다도 언니네 텃밭을 통해서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사니 행복하다. 나이가 들었지만 무언가 생산할 수 있는 삶이 행복하다"라고 한다.
박경숙씨가 서울에서 상주시 공검면으로 귀농한 것은 5년 전이다. 논 600평, 밭 1200평, 닭 20마리를 키우는 소농이지만, 자신만의 월 소득을 100만 원 이상 올리고 있다. 채소를 키워 꾸러미에 넣고, 조청, 청국장 등을 생산해 지인에게 보내고, 언니네 텃밭 온라인 장터에서 팔기 때문이다. 다품종 소량생산과 직거래의 힘이다.
식량주권 지키는 언니네 텃밭
박경숙씨 행복의 중심에는 언니네 텃밭 '경북 상주 봉강공동체'가 있다. 봉강공동체는 지역재단이 개최하는 2013년 전국지역리더대회에서 지역리더 조직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봉강공동체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 식량주권사업단 '언니네 텃밭'에 속해 있는 11개의 공동체 가운데 하나다. "여성 농민이 역사와 생산의 주인으로 우뚝 서기 위해, 농촌과 농업을 힘찬 생명력으로 지켜나가기 위해" 1989년 창립한 전여농은 2009년에 토종 씨앗과 식량 주권을 지키기 위해 언니네 텃밭을 통한 제철꾸러미 사업을 시작했다. 언니네 텃밭을 중심으로 전여농이 하고자 하는 일들은 매우 소중하다.
첫째, 식량주권을 실현하고자 한다. 식량주권(Food Sovereignty)이란 생태계에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된 건강하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이며, 민중들이 자신의 고유한 식량과 농업체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언니네 텃밭은 여성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과, 토종씨앗 지키기, 전통음식 문화 보전 활동을 하고 있다.
둘째, 지속가능한 생태농업을 확산하고자 한다. 소농의 상징인 텃밭 농사는 순환적인 생산방식, 생명과 생태를 존중하는 유기농업이다. 유기물이 축적되고, 지역의 자원이 순환하고, 자원을 보존하며 환경과 생태를 살릴 수 있는 농사가 텃밭 농사이다.
셋째, 공동체 지원 농업(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 CSA)을 실현한다. 언니네 텃밭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생태순환 농사를 짓는 여성 농민 생산공동체와 소비자들이 함께 짓는 농사이다. 소비자 회원은 생산자 공동체와 제철꾸러미로 연결되며, 생산지를 방문하고 일손 돕기, 생산자와의 만남 등 다양한 교류를 하며 농업의 미래를 열어 간다.
넷째, 지역 먹을거리 체계를 구축한다. 지역 먹을거리 체계는 곡물메이저를 비롯한 초국적 농식품 기업에 의해 장악된 세계 먹을거리 체계로부터 발생하는 먹을거리의 위험성, 환경파괴, 가족농의 해체, 지역공동체의 붕괴 등에 대응하기 위해 일정한 지역을 단위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먹을거리를 매개로 공동체를 형성하는 활동이다.
봉강공동체의 다양한 활동 | ▲ 꾸러미 포장 작업을 하는 공동체 회원들 | ⓒ 지역재단 | |
2009년 결성된 봉강공동체는 전여농의 언니네 텃밭이 추구하는 가치를 활발하게 실천하는 조직이다. 현재 봉강공동체의 생산자 회원은 16명이며 제정이 대표, 황재순 사무장이 중심이 되어 재미있게 활동하고 있다. 봉강공동체는 사무소와 작업장이 있는 상주시 외서면 봉강리의 여성 농민들이 중심이지만, 이웃 마을에도 회원이 있다.
봉강공동체가 하는 일은 다른 지역의 언니네 텃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가장 중요한 일은 제철꾸러미를 소비자 회원에게 보내는 일이다. 소비자 회원은 2009년에 31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300명으로 늘었다. 알음알음으로 소비자가 느는 데는 매스컴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소비자 회원은 매주 꾸러미를 받는 회원이 100명, 격주로 꾸러미를 받는 회원이 200명이다. 꾸러미는 기본적으로 8~9 품목(두부, 김치, 달걀, 간식 1가지, 채소 4~5가지)으로 구성된다. 꾸러미는 4인 가구 기준으로 꾸러미당 2만 6500원으로 매주 혹은 격주로 보내며, 1인 가구에는 2만 1500원의 꾸러미를 격주로 보낸다.
봉강공동체의 전체 매출은 지난해 2억 8천만 원으로 1인당 평균 1800만 원 수준인데, 연령에 따라 개인별 차이가 크다. 70~80대 회원은 생산량이 많지 않아 생산한 농산물을 대부분 꾸러미로 판매한다. 젊은 층은 다품종 소량생산품은 꾸러미로 내지만, 다양한 판매처를 활용한다. 꾸러미와 온라인 장터 외에 가톨릭농민회, 상주생각(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직매장), 목요여성 농민장터를 통해서도 판매한다. 이처럼 생산자 회원들은 다양한 직거래를 통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취 가격에 농산물을 판매한다.
봉강공동체의 중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는 토종 씨앗 지키기이다. 봉강공동체가 속해 있는 전여농은 2008년부터 토종 씨앗 지키기 네트워크 '씨드림'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현재 토종씨앗지키기 운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봉강공동체 회원들은 1인 세 가지 품종 이상의 토종 씨앗을 심고 가꾸고 보존한다.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5대 종자회사 가운데 네 곳이 외국기업에 팔려나갔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청양고추의 주인은 다국적 종자회사인 몬산토이다. 무와 배추를 비롯한 토종 채소 종자의 50%, 양파·당근·토마토 종자는 80%가 인수 과정에서 해외로 넘어가게 되면서 다국적 기업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 10대 다국적 종자 기업이 세계 종자시장의 75%를 과점하고 있다.
종자 종속은 우리의 식량주권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요소의 하나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정부는 2012년에 종자산업 기반 구축을 위한 이른바 골든 시드 프로젝트(Golden Seed Project)를 시작했다. 여성 농민들이 정부보다 먼저 나서서 종자, 그것도 토종 종자의 보존을 위해 힘쓰고 있으니 박수를 보낼 일이다.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언니네 텃밭' 봉강공동체는 소비자를 만나기 위해 2012년 4월부터 매주 목요일 상주시내에서 농민장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장터를 거의 못 열었지만, 2019년에는 연중 28주나 개설했고 350여 명의 소비자가 농민장터를 찾아 하루 평균 12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이와 같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남이 토대가 되어 2017년 7월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이 창립됐다. 104명의 생산자 조합원으로 시작한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은 2018년 9월 직거래 매장인 '상주생각' 1호점을 개장했다. 현재 271명의 조합원이 '상주생각'을 통해 연간 10억 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제철 꾸러미와 토종 씨앗 지키기, 목요농민장터 이외에도 봉강공동체는 정신대 여성 쉼터, 비전향 여성 장기수,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연대사업도 하고 있다. 또한 창립 이래 12년째 한 주에 4개의 기부 꾸러미를 보내고 있는데, 상주 지역의 어려운 가정에도 매주 2개씩 꼬박꼬박 보낸다.
봉강공동체 회원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14년 중국 상해로 같이 여행 간 것인데, 해외여행을 처음 가신 회원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여름 보너스로 회원들에게 30만 원씩 지급해 모두 기뻐했다고.
농업, 농촌, 농민과 사랑에 빠진 대학생 | ▲ 인터뷰 하는 김정열씨(오른쪽) | ⓒ 지역재단 | |
봉강공동체의 결성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정열(55)씨의 역할이 컸다. 김정열씨는 경북 안동이 고향이다.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1학년 시절에 충북 괴산군 감물면으로 농활을 간 것이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경북 상주 외서면으로 귀농했다. 상주농민회(1990년 4월 23일 창립)가 농민회 간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같은 해 8월에 상주농민회의 부인들을 중심으로 상주한마음회(후에 상주여성농민회로 개칭)가 창립되어 초대 총무를 맡아 8년간 일했다. 이듬해 네 살 위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상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인 남주성씨는 고향이 경북 예천이다.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하고 상주농민회에서 홍보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남주성씨는 한눈에 보기에도 선하고 성실하고 심지가 굳은 사람이다.
하지만 김정열씨의 부모님은 이 결혼을 몹시 반대했다고 한다. 당시 김정열씨의 아버지는 강원도 삼척탄좌의 탄광부로 일하고 있었다. 3남 1녀의 장녀인 그녀가 대학을 나와 집안의 기둥이 되기를 바랐는데, 귀농한 것도 모자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내와 결혼을 한다고 하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부모님의 반대로 초대 상주농민회장의 부인인 문달림(83세, 봉강공동체 회원)씨가 신방 이불부터 신혼살림 일체를 장만해 주었다. 부부는 외서면에 중·고등학교가 없어 10년간 2남 1녀를 통학시키느라 고생했지만, 큰딸을 여고 교사로 잘 키워냈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부부가 고향도 아닌 곳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하니, 보수성이 강한 경북 농촌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빨갱이라고 의심하는 사람조차 있었다. 그녀와 남편은 묵묵히 농사일과 농민회 일을 열심히 하면서 동네 사람으로 살아갔다. 20년 세월이 흘러 그녀는 이웃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며, 14명의 생산자 회원으로 2009년 5월 언니네 텃밭(당시는 우리텃밭) 봉강공동체를 창립하고, 7월에 31명의 소비자 회원에게 꾸러미를 배송했다. | ▲ 언니네텃밭 회원들 | ⓒ 지역재단 | |
김정열씨는 2009~2014년 봉강공동체 사무장으로서 초기의 힘든 실무를 담당하는 한편, 2009~2011년에는 전여농 언니네 텃밭 경북 단장을, 2011~2014년에는 언니네 텃밭 전국단장 겸 전여농 식량주권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2017년부터 현재까지 봉강공동체 감사를 맡고 있다.
김정열씨는 이처럼 봉강공동체를 시작으로 전여농의 언니네 텃밭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심 역할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2015~2016년에는 전여농 사무총장으로서 여성농민운동을 이끌었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전여농 국제연대위원으로서 국제농민운동조직인 비아캄페시나(Via Campesina: 농민의 길) 동남·동아시아 대표를 역임하면서 글로벌 여성 농민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오래된 미래, 봉강공동체 | ▲ 봉강공동체를 방문한 외국 여성 공무원들과 함께 | ⓒ 지역재단 |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1992년)는 전통문화와 생태적 가치를 지키며 내면의 풍요와 평화를 누리던 티베트의 라다크가 개발과 세계화에 의해 파괴되는 과정을 비통한 심정으로 그리고 있다. 헬레나는 문명이라는 이름의 서구 산업문화가 자연과 문화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권력과 자원을 갈수록 소수의 손아귀에 집중시키고 있음을 고발하고, "우리가 자연의 필요와 한계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다면 자연이 우리를 틀림없이 파멸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녀의 경고는 코로나19로 현실화됐다.
한편 헬레나는 세계화에 대항해 지역적 가치를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 운동에 주목했다. 특히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장거리에서 수송된 정체를 알 수 없는 식품보다는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하고 맛있고 더 영양이 풍부한 유기농산물을 사 먹자는 '로컬 푸드 운동'에 주목했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농민 시장이 열리고, 생산자들은 매주 신선한 농산물을 소비자들에게 '농산물 상자'로 배달한다.
헬레나는 "인간적인 규모의 구조들이 땅과의 긴밀한 유대를 키우고, 활발하고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키우며, 다른 한편으로 튼튼하고 생명력 있는 공동체, 건강한 가족 그리고 남성과 여성 간의 더 큰 균형을 유지하던" 라다크의 삶이 우리의 미래라고 말한다.
봉강공동체에서 우리의 '오래된 미래'를 본다. 1970년대까지 농민들은 대략 1.0~1.5헥타르(ha)의 농지에서 가족끼리 가축을 기르고 다양한 농산물을 생산해 농업소득으로 가계비를 충당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이후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고 국제경쟁력이 농정의 주요 목표가 되면서 농업경영의 규모화·기계화·시설화·단작화(단일한 작물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것)가 급속히 진전됐고, 농촌의 사회적 경제적 생태적 균형은 급속히 붕괴했다. 생산주의 농정은 농촌의 생태환경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전체 농민의 1%도 되지 않는 경지 규모 10헥타르(ha) 이상의 농민만이 농업소득으로 가계비를 충당할 수 있는 황당한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 농업과 농촌의 재생을 위해서는 생산주의에서 벗어나 농업과 농촌이 지닌 본래의 다원적 가치(경제적·사회문화적·생태적 가치)를 복원해야 한다. 봉강공동체는 생태적 농업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되돌리고 자연계의 다양성을 살려내고자 한다. 세계화에 맞서 지역은 자기 필요(식량과 에너지 등)를 기본적으로 자립하는 지역화를 위해 노력한다. 마을에서는 화목보일러(나무를 연료로 물을 끓여 증기를 발생시키는 보일러)를 널리 사용한다. 공동체적 삶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선한 관계를 실현하고 동시에 도시와 농촌의 상생을 추구한다.
봉강공동체의 언니들은 텃밭 농사를 통해 자기만의 통장을 갖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면서 가정 내 지위가 향상되고 남편과 평등한 관계를 실현한다. 사회적 활동과 교육 등으로 자기 삶의 주체성을 높이고, 지역사회에서 여성의 발언권을 확보해 간다. 화요일마다 모여 꾸러미 공동작업을 하고 민주적 회의를 통해 공동체의 가치를 공유한다. 공동작업에는 회원 모두가 다 함께 참여하는데, 공동체 운영을 위해 꾸러미 판매액이 10만 원 미만인 회원은 수수료를 내지 않고, 10~50만 원은 판매액의 5%, 50만 원 이상의 꾸러미는 10%의 수수료를 낸다.
지속가능한 봉강공동체를 위하여 | ▲ 봉강공동체 창립 당시 | ⓒ 지역재단 | |
봉강공동체의 활동을 통해서 농촌에서의 자립과 공동체 활성화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봉강공동체를 위협하는 최대의 난제는 언니들의 나이가 점차 많아지는데 새로운 회원의 유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봉강공동체 언니네 텃밭 회원들의 연령 구성을 보면 80대 2명, 70대 3명, 60대 5명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50대는 4명, 40대는 1명에 지나지 않는다. 창립 이후 12년이 지난 지금 언니네 텃밭은 할머니네 텃밭이 되었다. 80대와 70대 회원들은 최소한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곧 은퇴할 것이다.
봉강공동체의 존속을 위해서는 젊은 층의 귀농이 꼭 필요하다. 김정열씨는 최저임금만 보장된다면 봉강공동체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농촌에서 자기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젊은이가 주변에 적지 않다고 한다. 봉강공동체는 젊은이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고 있고, 땅을 마련하기 위해 기금도 적립하고 있다. | ▲ 청년들이 꾸러미 작업을 돕고 있다. | ⓒ 지역재단 | |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한 가지 방법은 가공품을 다양화하는 것인데, 농산물 가공 허가를 얻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큰 걸림돌이다. 농민들의 숙원인 농가 가공을 전면적으로 자유화해야 한다. 텃밭에서 다품종 소량의 농산물을 생산하고 가공을 다양화하고 소비자와 직거래한다면 봉강마을과 같이 농토가 적은 산골 마을도 지속 가능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정부가 준비된 농촌 공동체에 젊은이들이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면 어떨까. 귀농할 젊은이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 연수, 지원을 전담할 기구도 필요하지 않을까. 봉강공동체가 마을을 넘어 면으로, 상주시로, 네트워크를 확장해 가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박진도 기자는 충남대 명예교수로 지역재단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