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마르쉐>
안녕하세요? 저는 김혜영이라고 합니다. 20여 년 전 농민들과의 인연으로 농민, 주부 공동체 활동을 하다가 이제는 농민이 되었고 특히 토종 씨앗에 큰 사랑을 갖고 토종 씨앗 보존, 증식, 나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토종 씨앗’을 지키는 데에 우리 여성 농민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언니네텃밭에서 펼치고 있는 토종 지킴이 활동을 통해 많이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 활동 중 매우 중요한 한 가지를 말한다면 ‘흙’ 즉, 농사짓는 땅과 인간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조상들의 전통 농법은 이 땅을 반 만 년 지속한 터전으로 지키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의 전통 농법은 구시대적이라는 오명을 쓰고 점점 사라져갔으며 1960년대 말 화학비료의 생산 공급이 시작되면서 헌신짝처럼 버려졌습니다. 전쟁 이후 굶주림을 면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통 씨앗보다 수확량을 늘릴 수 있는 개량 종자들이 정책의 일환으로 들어왔고 화학 비료와 그에 따른 농약의 사용도 50여년 지속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방식이 초기 식량 확보에는 큰 도움이 되었으나 지나친 화학비료와 농약, 제초제의 사용으로 이제 우리나라의 농지는 무늬만 흙일 뿐 지렁이, 땅강아지 한 마리 살 수 없는 척박한 땅이 되었습니다. 화학 비료의 한계 생산 시기가 대략 사용 후 45년 전후라 합니다. 즉 화학 비료로 인한 생산량의 증가가 정점을 찍고 나면 단순 무기질비료(화학비료의 본래 이름)로는 더 이상 작물의 생산이 증가하지 않고 온갖 병충해에만 시달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미 유럽에서는 유기질 비료를 사용하는 등 땅의 힘을 살리는 농법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흙 한 숟가락 안에는 1억 마리 이상의 미생물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녀석들을 시작으로 흙 속에 건강한 먹이 사슬이 형성되고 생태계가 균형을 이루게 되면 더러 병충해가 오더라도 이겨낼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수 십 수 백 년 지속가능한 농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제 토종 씨앗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토종 씨앗은 농민의 손에서 받아지고 다시 심어지는 씨앗입니다. 씨앗은 단순히 단백질 또는 탄수화물이라는 성분으로 그 값어치를 매길 순 없습니다. 건강한 땅에서 자란 작물에 담겨있는 기운이 곧 ‘생명력’이고 그 생명력이 먹을거리로 와서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건강한 정신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콩의 해’입니다. 지구상에서 콩은 흙을 건강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동물을 먹지 않아도 인류를 건강하게 해주는 있는 완벽한 식품입니다. 그 콩의 원산지가 만주 지역과 한반도입니다. 기원전 91년 사마천의 [사기]에 “북으로 산융을 정벌하고 고족국(=고구려) 지역까지 갔다가 융숙(= 콩, 대두)을 얻어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고 3세기 중엽 [삼국지위지동이전]에는 “고구려 사람이 장이나 술 같은 발효 음식을 잘 만들고 발해에서는 콩과 소금을 발효시킨 ‘시’라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